이따금 가슴 한편이 아파온다. 누가 콕 찌르듯 잠이 달아나는 아픔이다. 잠이 오지 않아 펜을 들고 생각을 쏟아낸다.
최근에 한 순장님이 내게 “늘 단답으로 대답해서 친해지기 어려워요.”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긴 숙고보다 직관적인 판단과 검토를 선호하는 탓일까. 상대방의 문장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미 결론과 피드백이 완결되곤 한다. 유유히 흐르는 하천보다 강하게 내리꽂는 폭포 같은 나의 ‘단답’이, 누군가에게는 큰 벽이었을지도 모르겠다.
2023년 2월, 인천국제공항에 발을 디디던 나와 내 친구 수현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나와 닮은 피부색을 한 ‘외국인’들이 다니던 생소한 모습을 평생 잊을 수 없다. 그리고 벌써 한국에 거주한 지 4년 가까이 되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이미 교회 도서관 대부분의 책들을 소화해냈기에, 평생토록 내게 한국어로 소통하는 것이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을 단 한 번도 떠올려본 적 없었다. 글쓰기 수업에서 C+를 받았을 때도, 인정하기 싫어 프로젝트 글쓰기를 수강하고 또다시 C+를 받았을 때에도 분명 무언가 오차가 있을 거라고, 나의 표현이 그저 교수님들의 취향에 걸맞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넘겨짚고 나의 언어를 연마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글과 말은 마치 눈빛과 손짓의 차이와 같아서, 미묘하면서도 매우 선명하게 달랐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나의 말하는 방식이 조금은 어려울지 몰라도 큰 오류가 없다고 믿었다. 문어체를 그대로 옮긴 듯한 나의 언어는, 적어도 내가 자란 곳에서만큼은 ‘올바른 한국어’였기 때문이다. 그렇다. 조금은 치사하지만, 오늘 나의 문제를 지나온 삶의 배경의 탓으로 슬그머니 돌려보고자 한다.
둥글게 앉아 이야기꽃을 피워도, 마치 혼자만 비눗방울 속에 갇혀 먹먹해진 소리를 듣는 것 같은 매일이었다. 사투리를 들어도 사투리인 줄 몰랐던 나는, 일상적인 단어들이 얕다고 생각해 늘 사람들의 말 뒤에 숨은 본래 의도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한국 사회가 ‘고맥락 사회’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자라온 탓에 그런 의심을 품고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표정으로, 눈빛으로 겨우 대화의 맥락을 파악할 뿐이었다. 침묵과 관찰, 그것은 다름에서 오는 외로움이 싫어 내가 둘러친 나름의 갑옷이었을지도 모른다.
말을 할 때에는 최대한 많은 상황에 공감되도록 휘황찬란한 단어를 택하여 보기도 했고, 화려한 조사, 부사와 형용사로 말을 치장해 보기도 했다. 서사를 부여해서 이야기해보았고, 비유를 활용해 보기도 했다. 침묵과 관찰이 나의 갑옷이었다면, 이런 수사학적 접근들이 내가 아는 유일한 무기였다. 날이 잘 드는 칼인 줄 알았던 나의 말은, 무디고 둔탁해 매번 내가 강하게 내려칠 따름이었다는 사실을 최근에야 알게 되었다. 지금껏 말을 많이 하면 전해지는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많은 말로 나의 동역자들에게 상처 입히고 나서야 비로소 이런 일이 성경에 이미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22 모세는 이집트 사람의 모든 지혜를 배워서, 그 하는 말과 하는 일에 능력이 있었습니다.
23 모세가 마흔 살이 되었을 때에, 그의 마음에 자기 동족인 이스라엘 사람의 사정을 살펴 볼 생각이 났습니다.
24 어느 날 그는 자기 동족 한 사람이 억울한 일을 당하는 것을 보고, 그의 편을 들어, 이집트 사람을 때려 죽여서, 압박받는 사람의 원한을 풀어 주었습니다.
25 그는 동포가 하나님이 자기 손을 빌어서 그들을 구원하여 주신다는 것을 깨달을 것으로 생각하였는데, 그들은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26 이튿날 모세는 동족들끼리 서로 싸우는 자리에 나타나서, 그들을 화해시키려고 하여 말하기를 ‘이 사람들아, 그대들은 한 형제가 아닌가? 그런데 어찌하여 서로 해하는가?’ 하였습니다.
27 그런데 동료에게 해를 입히던 사람이 모세를 떠밀고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누가 너를 우리의 지도자와 재판관으로 세웠느냐?
28 어제는 이집트 사람을 죽이더니, 오늘은 또 나를 그렇게 죽이려 하는가?’
29 이 말을 듣고서, 모세는 도망하여, 미디안 땅에서 나그네가 되었습니다. 거기서 그는 아들 둘을 낳았습니다.— 사도행전 7장
위 말씀은 스데반이 한 말이다. 모세는 고등 교육을 받아 지혜와 능력을 갖추었지만, 그의 의도가 자기 민족들에게 전달되지 않았다. 그가 어떤 실수를 저질렀을까? 그는 하나님이 자기 손을 빌려 히브리인들을 구원하여 주신다 믿었으나, 그 손을 폭력의 도구로 사용했다. 이튿날 그가 건넨 말은 온당했으나, 주먹에 가려졌다.
나 또한 다르지 않았다. 건네려던 말이 옳았어도, 그보다 먼저 세게 내려친 내 말들에 가려지곤 했다.
8 “너는 지팡이를 잡아라. 너와 너의 형 아론은 회중을 불러모아라. 그들이 보는 앞에서 저 바위에게 명령하여라. 그러면 그 바위가 그 속에 있는 물을 밖으로 흘릴 것이다. 너는 바위에서 물을 내어, 회중과 그들의 가축 떼가 마시게 하여라.”
9 모세는, 주님께서 그에게 명하신 대로, 주님 앞에서 지팡이를 잡았다.
10 모세와 아론은 총회를 바위 앞에 불러모았다. 모세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반역자들은 들으시오. 우리가 이 바위에서, 당신들이 마실 물을 나오게 하리오?”
11 모세는 팔을 높이 들고, 그의 지팡이로 바위를 두 번 쳤다. 그랬더니 많은 물이 솟아나왔고, 회중과 그들의 가축 떼가 마셨다.
12 주님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이 보는 앞에서 나의 거룩함을 나타낼 만큼 나를 신뢰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내가 이 총회에게 주기로 한 그 땅으로 그들을 데리고 가지 못할 것이다.”— 민수기 20장
그뿐만 아니라, 모세는 지팡이를 들었지만 명하신 대로 쓰지는 않았다. 바위에게 명령하라 하셨는데도 모세는 사람들에게 호통을 치고 바위를 두 번이나 힘껏 내리쳤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도구를 폭력의 도구로 바꾼 것이다. 하나님의 ‘궁극적인’ 뜻을 이행했으니 약속하신 열매를 주셨을지라도, 분노로 이행했으니 하나님 눈에 어떻게 좋게 보였을까. 내 말도 그랬다. 세게 내려친 말은 나와 동역자들 누구에게도 유익이 되지 못했다. 열매만이 능사가 아니었다.
1 형제자매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로 가서 하나님의 비밀을 전할 때에, 훌륭한 말이나 지혜로 하지 않았습니다.
2 나는 여러분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 곧 십자가에 달리신 그분 밖에는, 아무것도 알지 않기로 작정하였습니다.
3 내가 여러분과 함께 있을 때에, 나는 약하였으며, 두려워하였으며, 무척 떨었습니다.
4 나의 말과 나의 설교는 지혜에서 나온 그럴 듯한 말로 한 것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이 나타낸 증거로 한 것입니다.
5 그것은, 여러분의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바탕을 두지 않고 하나님의 능력에 바탕을 두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고린도전서 2장
바울이 다른 길을 보여 준다. 나와 모세처럼 확신, 지혜와 힘을 믿고 내려치는 것이 아니라, 약한 채로 하나님을 신뢰하며 다가가는 것이 낫다고 몸소 가르쳐 주었다. 이제 나도 오해만 부르던 침묵과 관찰이라는 갑옷을 내려놓고 날카롭다고 믿었던 무딘 나의 말을 내려놓아야 할 때가 왔다. 이제는 하나님께서 입혀주시는 신뢰와 지혜의 옷을 입고, 성령께서 다스리시는 혀를 기대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