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강을 맞이하고 비정형화된 삶을 다시금 살아가게 되니, 얼마나 황홀한 방학을 경험했던 것인지 다시금 느끼게 됩니다. 하필 개강 날 비가 사무치게 내려 바지와 신발이 홀딱 젖었지만 가뜩 상기된 학우들을 보니 새삼 대학은 다른 세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달까요, 심상을 하나로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4학년, 졸업 시기를 고민하는 저이지만, 이들 무리에 섞인 탓이라 말해야 할까요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이럴 때, 저는 가장 취약합니다. 이에 대하여 방학 중 배운 교훈을 글로 녹여봅니다. 이 글은 저의 부끄러운 죄 고백입니다.

이번 방학은 제게 지난 1년의 의의를 찾게 해주는 시기였습니다. 일은 실로 하나님의 선물이더군요. 필요를 채워주고, 가치를 창출하고, 누군가의 문제를 해결하고 감사와 인정, 그리고 보수를 받는 것은 제 마음속 빈자리를 채워주는 듯했습니다. ‘일’은 사람을 한데 모으는 힘이 있습니다. 각자가 인정이나 보수를 궁극적인 목적으로 삼을 수 있지만 결국 모두 일로 묶입니다. 일은 공동체를 만들고, 관계를 생성하고, 신뢰의 출처가 됩니다. 일은 숭고합니다. 하지만 한 가지 마주하기 두려웠던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한없이 낮아졌던 제 자신이 한순간에 콧대 높은 모습으로 변모하려 했다는 사실입니다.

36 만물이 그에게서 나고, 그로 말미암아 있고, 그를 위하여 있습니다.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기를 빕니다. 아멘.

— 로마서 11장

6 성읍 안에서 비상나팔이 울리는데, 사람들이 두려워하지 않겠느냐? 어느 성읍에 재앙이 덮치면, 그것은 주님께서 하시는 일이 아니겠느냐?

— 아모스 3장

성경에서 말하듯, 천하만사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움직입니다. 천하 만물 하나님께로부터 났으며, 하나님을 위해 있습니다. ‘일’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나는 어느 순간부터 ‘일’이 아닌, ‘증명’을 하려 했습니다.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인정받는 것이 얼마나 기쁘던지요, 당시 찍어두었던 사진이었습니다. 얼마나 자랑스러웠으면 직접 편집해 표시까지 해두었습니다. 내가 열심히 하는 이유는 하나님이어야 했습니다. 내가 받는 좋은 평가는 하나님께로 향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나의 목을 곧게 세우는 것에 열심과 평가를 소비했습니다. 일자리에서의 ‘증명’은 필연적으로 두 가지 평가를 요구합니다. 첫 번째는 주어진 업무를 수행해 내는 객관적 평가, 두 번째는 기여도를 드러내는 상대적 평가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객관적 평가가 더욱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상대적 평가만이 제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일, 특히 나 세상에서의 일은 대부분의 믿는 이들에게 유일한 사역의 자리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땀과 성과가 겨자씨만 한 씨앗이 되어 누군가에게 심어질 수 있다는 소망을 품고 살아가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1년, 소망 하나로 살아온 저이지만 세상의 인정이 주는 달콤함에 너무 쉽게 무너졌습니다. 그 겨자씨만 한 씨앗이 소망과 함께 다른 이들에게 심어지기보다 나의 배를 채우기 위해 내 뱃속으로 들어가는 꼴이 되어버린 겁니다. 겨자씨 한 알이 얼마나 배를 채워줄 수 있을까요? 전혀 채워주지 못합니다. 그리고 나의 능력으로는 내 배를 채울 만큼 겨자씨를 손에 쥐지도 못합니다. 그럼에도 눈이 멀어 추하게도 겨자씨를 탐하는 저를 보았습니다.

일은 선물입니다. 인정과 보수는 성경적입니다. (눅 10:7, 딤전 5:17 등) 그러나 그것을 받는 자에게는 그만한 씨를 뿌릴 의무가 있습니다. (마 6:1, 딤전 6:10 등) 이는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왔고 하나님을 위해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이만큼 했어요!” 대신, “하나님께서 이만큼이나 허락하셨어요!”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하고, 마태복음 20장에 등장하는 늦게 온 품꾼의 비유에서처럼, 하나님의 성과에 대한 기준이 우리와는 사뭇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나 또다시, 저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나는 오늘, 어떤 열매를 심었을까요? 이제는 더 이상 확신하지 못하겠습니다. 내가 자부할 수 있는 것은 내가 그리스도의 약속을 믿는다는 막연한 관념과,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주장하는 가슴속 뜨거운 무언가뿐입니다. 이제 나의 눈은 나에게 모든 믿음은 맹목적이라 이야기합니다. 나의 귀는 나에게 모든 말이 허울 좋은 말이라 이야기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오늘, 눈먼 내가 심은 이 씨앗이 하나님의 것이었기를 바랄 뿐입니다. 나의 ‘순종’이 정말 순종이었길 의심과 확신, 후회와 보람 사이에서 간절히 바랄 뿐입니다.

죄인 된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칭의를 신뢰하고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마음을 잊지 않으려 발버둥 치는 행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마음이 결코 순수할 리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입니다.

밧세바 사건 이후 지어진 다윗의 시가 유독 와닿는 밤입니다.

1 하나님,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으로 내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주님의 크신 긍휼을 베푸시어 내 반역죄를 없애 주십시오.
2 내 죄악을 말끔히 씻어 주시고, 내 죄를 깨끗이 없애 주십시오.
3 나의 반역을 내가 잘 알고 있으며, 내가 지은 죄가 언제나 나를 고발합니다.
4 주님께만, 오직 주님께만, 나는 죄를 지었습니다. 주님의 눈 앞에서, 내가 악한 짓을 저질렀으니, 주님의 판결은 옳으시며 주님의 심판은 정당합니다.
5 실로, 나는 죄 중에 태어났고, 어머니의 태 속에 있을 때부터 죄인이었습니다.
6 마음 속의 진실을 기뻐하시는 주님, 제 마음 깊은 곳에 주님의 지혜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7 우슬초로 나를 정결케 해주십시오. 내가 깨끗하게 될 것입니다. 나를 씻어 주십시오. 내가 눈보다 더 희게 될 것입니다.
8 기쁨과 즐거움의 소리를 들려주십시오. 주님께서 꺾으신 뼈들도, 기뻐하며 춤출 것입니다.
9 주님의 눈을 내 죄에서 돌리시고, 내 모든 죄악을 없애 주십시오.
10 아, 하나님, 내 속에 깨끗한 마음을 창조하여 주시고 내 속을 견고한 심령으로 새롭게 하여 주십시오.
11 주님 앞에서 나를 쫓아내지 마시며, 주님의 성령을 나에게서 거두어 가지 말아 주십시오.
12 주님께서 베푸시는 구원의 기쁨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내가 지탱할 수 있도록 내게 자발적인 마음을 주십시오.
13 반역하는 죄인들에게 내가 주님의 길을 가르치게 하여 주십시오. 죄인들이 주님께로 돌아올 것입니다.
14 하나님,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 내가 살인죄를 짓지 않게 지켜 주십시오. 내 혀가 주님의 의로우심을 소리 높여 외칠 것입니다.
15 주님, 내 입술을 열어 주십시오. 주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내 입술로 전파하렵니다.
16 주님은 제물을 반기지 않으시며, 내가 번제를 드리더라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17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제물은 찢겨진 심령입니다. 오, 하나님, 주님은 찢겨지고 짓밟힌 마음을 멸시하지 않으십니다.
18 주님의 은혜로 시온을 잘 돌보아주시고, 예루살렘 성벽을 견고히 세워 주십시오.
19 그 때에 주님은 올바른 제사와 번제와 온전한 제물을 기쁨으로 받으실 것이니, 그 때에 사람들이 주님의 제단 위에 수송아지를 드릴 것입니다.

— 시편 51편

렘브란트 〈다윗을 책망하는 나단〉
렘브란트 〈다윗을 책망하는 나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