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어려웠습니다.
나의 이야기 방식이, 나의 생각이 모두와는 너무 달라서, 같은 언어를 쓰면서도 우리는 번번이 서로 다른 세상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서로 마음을 던져도 닿지 않고, 양손으로 주어도 잡히지 않는 나날들이었습니다. 때로는 나의 성장 배경을 탓하고 싶었고, 때로는 부모님이 원망스럽기도 했습니다.

이 외롭고 무거운 자리를 먼저 걸어본 선배들의 부재도 컸습니다.
변화의 과도기 한가운데서, 아무런 오답노트도 없이 홀로 앞장서서 길을 개척하며 걷는 것이 얼마나 뼈저리게 외롭던지요.

어느새 온몸에 가시를 두르고 악에 받쳐있는 제 모습을 보았습니다.
시작은 생명을 전하는 자였을 터인데, 어느새 보이는 건 스스로를 죽음의 고비에 몰아넣고 있는 낯선 사람이었습니다.

이제야 그 지난한 시간이 끝이 났습니다.
어깨를 짓누르던 무거운 책임의 족쇄에서 벗어나고 나니, 이제야 비로소 보입니다.
책임이 지나간 빈자리에 머무르는 것은 이제 미안함뿐입니다.
조금만 더 이해했더라면, 설령 가식일지라도 ‘사랑’처럼 보이는 일을 행했더라면 어땠을까요?
후회는 없습니다. 최선을 다하였고, 이 주장에 대해서는 일말의 거리낌도 없습니다.
자신을 향한 처절한 채찍질이었고, 공동체를 향한 가장 뜨거운 사랑이었습니다.
하지만 많이 미안합니다.
참으로 미묘한 마음입니다.

그래도 배운 것이 있습니다.
사람마다 관심의 대상과 그 깊이가 다름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웁니다.
나의 진심이 아무리 순수할지라도 타인에게 가닿아 보이는 것은 결국 겉으로 드러나는 열매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남들보다 예민한 나의 민감성은 타인의 곁에서 먼저 알아차리고 잠잠히 있어주기 위한 도구이지, 타인을 진단하고 처방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이 모든 진실이 무거운 책임의 자리에서 내려오고 나서야, 비로소 깊이 인정이 됩니다.

아직도 내 삶의 조타륜은 내 손에 꽉 쥐어져 있습니다.
1년의 걸음마를 지나고 나니, 이제야 아주 조금 하나님의 일하심이 어렴풋 이해가 됩니다.
이제는 조타륜을 움켜쥔 두 손에서 힘을 빼고, 한 손 정도는 하나님과 맞잡고 나아갈 수 있을까요?

나비는 성체가 되기 위해 번데기 속에서 온전히 액체가 된다고 합니다.
번데기, 그 작고 보잘것없는 공간 속에서 치열하고 또 치열한 재구성 끝에 이전에는 없는 아름다움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그리고 그 과정 중에서 질량의 4할을 잃는다고 합니다.

낮아지는 것은 봉사와 헌신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단단했던 내 안의 잣대들을 부드럽게 녹여내고, 기꺼이 내 질량의 4할을 잃어버리는 완전한 자기 부정 속에서만 우리는 비로소 서로의 곁에 앉을 수 있나 봅니다.
지난 1년, 대표 순장의 자리가, 나의 매일이 번데기였습니다.

마지막으로 구합니다.
부디 나의 뾰족함에 베이고 상처 입은 이들이 넘어지지 않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나의 미숙한 성장을 위해 기꺼이 양분이 되어준 이들을 위해 축복을 구해 주십시오.
내가 또다시 섣부른 옳음으로 누군가를 넘어뜨리지 않도록 곁에서 지켜봐 주십시오.
그리고 마침내, 이 모든 엇갈림마저 찬란하게 엮어 우리로 하나 되게 하실 하나님을 찬양해 주십시오.
나의 간절한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