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견을 비판하지 말라
2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먹을 만한 믿음이 있고 믿음이 연약한 자는 채소만 먹느니라
3 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않는 자는 먹는 자를 비판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이 그를 받으셨음이라
4 남의 하인을 비판하는 너는 누구냐 그가 서 있는 것이나 넘어지는 것이 자기 주인에게 있으매 그가 세움을 받으리니 이는 그를 세우시는 권능이 주께 있음이라
5 어떤 사람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어떤 사람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 각각 자기 마음으로 확정할지니라
6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
7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9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라
10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비판하느냐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11 기록되었으되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살았노니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 하였느니라
12 이러므로 우리 각 사람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 로마서 14장
개역개정은 너무 오해하기 쉽게 번역되어 있어 해당 본문은 원어로 찾아보아야 바울이 전하고자 하였던 뉘앙스를 정확히 알 수 있다. 따라서 몇 가지 중요한 단어들이 본래 어떤 의미로 쓰였는지 적어보고자 한다.
A. 곁을 내어주고 함께 하는 것
(1절)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견을 비판하지 말라
1절에서부터 짚어야 할 단어들이 등장한다. ‘받되’라고 번역된 단어는 본래 ‘προσλαμβάνω’(프로슬람바노)이며, 이 뜻은 단순히 참거나 용인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는 ‘자신에게’(프로스) ‘취하다’(람바노)의 합성어로 굳이 번역하자면 ‘곁을 내어주다’와 같이 적극적이고 따뜻한 사랑의 행위를 의미한다.
뿐만 아니라, ‘비판하지 말라’는 원어로 ‘μὴ εἰς διακρίσεις διαλογισμῶν’(메 에이스 디아크리세이스 디알로기스몬)인데, 그 뜻은 ‘의견/생각에 대해 심판관 노릇을 하지 말라’이다. 당시 로마 교회가 헬라파 그리스도인과 유대파 그리스도인들로 나뉘어 각자가 익숙한 문화에 믿음의 형태가 녹아드는 것을 두고 서로 분쟁하였던 것을 생각하면 단순히 ‘비판’보다는 훨씬 강한 어조임을 알 수 있다. 바울은 베드로에게 공식적인 서신으로도 비판을 했던 사람인데, 건설적인 비판마저 없애려 했을 리가 없을 테니 이 번역이 더욱 적합할듯하다.
B. 강한 자와 약한 자의 죄
(3절) 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않는 자는 먹는 자를 비판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이 그를 받으셨음이라
(10절)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비판하느냐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바울은 강한 자와 약한 자를 각각 ‘먹는 자’, ‘먹지 않는 자’로 구분 지었다. 당시 헬라파 그리스도인들은 제사에 사용된 음식이 시장에 싸게 나오는 문화를 이용하는 것이 일상적이었으나, 유대파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문화와 관습상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따라서 강한 자는 헬라파 그리스도인, 약한 자는 유대파 그리스도인을 의미하는 것이고, 바울이 사용한 약하고 강하다는 표현은 믿음의 수준의 차이가 아닌 각자의 하나님을 대하는 태도에서 비롯된 양심이 억센 자와 그렇지 않은 자를 의미하는 것이다. 수신인을 고려했을 때 참으로 뱀같이 지혜로운 바울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서 양심이 억세지 않은 자 — 즉, 헬라파 그리스도인들은 유대파 그리스도인들을 ‘업신여겼다’. 바울이 사용한 업신여겼다는 말은 원어로 ‘ἐξουθενέω’(엑수데네오)이며, 그 뜻은 ‘없던 것으로 만들다’이다. 한 마디로 유대파 그리스도인들이 역사적 배경으로 생긴 억센 양심으로 인해 어려워하는 것을 두고 경멸하고 무시했다는 뜻이다.
또한, 양심이 억센 자 — 즉, 유대파 그리스도인들이 범한 죄는 ‘비판’이었다. 여기서 사용된 비판은 ‘κρίνω’(크리노)인데, 그 뜻은 자신을 높이며 상대를 깎아내리는 태도를 의미한다.
C. 확신
(5절) 어떤 사람은 이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어떤 사람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 각각 자기 마음으로 확정할지니라
(6절)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
(7절)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8절)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바울은 ‘확정할지니라’와 ‘주를 위하여’라는 단어를 의도를 담아 선택했음이 분명하다. 그도 그럴게, ‘확정할지니라’는 ‘πληροφορέω’(플레로포레오) 즉, ‘온전한 확신을 가지라’/’완전히 채워지다’를 의미하는 단어를 택했음이 모든 것이 믿음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알았고, 뒤이어 그 믿음이 ‘τῷ κυρίῳ’(토 퀴리오) 즉 주님을 향한다는 단어로 수신인의 시선을 옮긴다. 여기서 ‘토 퀴리오’는 헬라어의 문법에 ‘여격’이라는 형태가 있는데, 이는 궁극적인 목적지를 묘사할 때 사용되는 문법이다. 따라서, 바울은 각자의 믿음의 확신이 ‘궁극적으로’ 어디에 있는지를 중요히 살피라고 이야기한 것이다.
D. 직고
(12절) 이러므로 우리 각 사람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
‘직고하리라’ 원어로는 ‘λόγον δώσει’(로곤 도세이)이다. 이는 logon(말) + dosei(주다)의 합성어로 본래 계산서/영수증을 제출한다는 회계 용어이다. 회계서류를 제출하듯, 명확한 기록을 결국 하나님께 각자 제출하게 될 것을 의미한다.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은 비판(크리노)를 지나치게 경계하고, 각자가 직고(로곤 도세이)할 때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바울이 경고하였던 각 지체의 분투를 없는 것으로 여기는(엑수데네오) 실수를 범하게 되는 경우나 지나치게 많아졌다. 그리고 우리는 옳은 것을 판단하는 것도 재판관의 역할이며, 멋대로 옳은 것을 규정하며 치켜세우는 것 또한 비판(크리노)임을 명심해야 한다. 이는 비판(크리노)에는 항상 비교가 따르기 때문이다.
각자가 각자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잘 믿으면 되는 줄로 알지만, 바울은 분명하게 서로 곁을 내어주고 환대(프로슬람바노)하라고 한다. 그러한 태도를 취할 때 어찌 ‘혼자’ 잘 믿을 수 있겠는가?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그의 곁을 내어주셨고(프로슬람바노) ‘우리’를 아버지로 부르셨다. 계산서는 각자 제출하겠지만(로곤 도세이), 그 여정은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며 함께 주를 향해(토 퀴리오) 소망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바울의 서신은 단순히 “하나님만 보라니까?”라며 답답해하는 서신이 아니라, 교회의 분열에 슬퍼하며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곁을 내어주셨듯, 우리도 사랑으로 곁을 내어주기 위해 하나님께로 시선을 돌리라는 애통함이 담긴 충고의 서신이다. 그리고 그 수신인은 비단 로마 교회 사람들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우리이기도 하다.
시간과 마음을 내어 나의 곁을 내어주는 사랑의 수고를,
상대의 영적인 투쟁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없던 것으로 여기고 무시당하였다 느끼지 않을법한 인내의 시선을, 그리고 잘못뿐만 아니라 옳음까지도 판단하는 재판관의 자리에서 내려와 각자가 하나님께 직고할 때를 함께 그리며 하나 되는 것.
우리가 할 것은, 할 수 있는 것은 그것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