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의 흐름 : 시험의 분별 → 하나님의 목적 → 우리의 연약함과 성령의 도우심 → 우리가 취해야 할 태도

목차

  1. 두 가지 시험
  2. 하나님의 목적
  3. 모르는 중에도
  4. 시험을 대하는 태도

1. 두 가지 시험

1 내가 나의 완전함에 행하였사오며 흔들리지 아니하고 여호와를 의지하였사오니 여호와여 나를 판단하소서
2 여호와여 나를 살피시고 시험하사 내 뜻과 내 양심을 단련하소서

— 시편 26편

해당 본문에서 다윗은 צָרַף (차라프, ṣā·rə·p̄āh) 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다.
이 단어는 금속을 연단하는 행위, 혹은 도가니 그 자체를 뜻하기도 하고, test의 의미로도 사용된다.
다윗은 하나님께 그의 마음이 향하고 있음을 보이고자, 혹은 더욱 확실히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 자신을 시험해 주시길 요구하였다. 이는 연단과 검증의 시험이다.

1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2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 마태복음 4장

그리스도께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셨다.
여기서의 시험은 πειρασθῆναι(peirasthēnai), 원형으로는 πειράζω(peirazó)이며, 이는 유혹으로서의 시험이다.

시편에서의 시험과 마태복음에서의 시험을 보기 좋게 표로 만들어 비교하여 보았다.

구분 시편에서의 시험 (연단과 검증) 마태복음에서의 시험 (유혹)
시험의 주체 하나님 (간구를 통하여서) 마귀
시험의 목적 믿음과 정결함의 증명 죄를 범하게 함

하나님은 우리를 시험(유혹) 하시지 않으신다.
다만 그는 분명 시험(검증) 하신다.

그러나 우리는 이 두 가지 시험을 구분할 만큼 눈이 밝지 못하다.
검증인 줄 알았는데 그것이 유혹이었을 수 있고, 유혹인 줄 알았는데 연단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우리는 유혹에 더욱 취약하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의 대적은 결코 우리를 한순간도 가만두지 않기 때문이다.

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9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

— 베드로전서 5장

칼뱅은 시험의 구분을 아래와 같이 서술하였다.

“시험들 중 일부는 우리의 오른쪽에 있고, 다른 일부는 우리의 왼쪽에 있다. …
오른쪽에 있는 시험은 … 그 달콤함으로 사람을 중독시켜서 하나님을 잊어버리게 만든다.
왼쪽에 있는 시험은 … 이것들의 가혹함과 엄격함은 사람을 낙담시키고 좌절시켜서 모든 확신과 소망을 잃고 하나님에서 완전히 멀어지게 만든다.”

— 『기독교강요』 (장 칼뱅) 중에서

2. 하나님의 목적

32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

— 요엘 3장

하나님의 목적은 ‘나’와 ‘너’의 개인적인 구원이 전부가 아니고,
그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온전히 사수하시는 그의 영광을 위한 것이다. 그 영광을 우리가 알고 누리고, 그와 함께 사랑하기 위하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소망하는 하나님 나라의 본질이며, 삶에서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할 가치이다.

9 야곱이 또 이르되 내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 내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 내게 명하시기를 네 고향,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네게 은혜를 베풀리라 하셨나이다
10 나는 주께서 주의 종에게 베푸신 모든 은총과 모든 진실하심을 조금도 감당할 수 없사오나 내가 내 지팡이만 가지고 이 요단을 건넜더니 지금은 두 떼나 이루었나이다
11 내가 주께 간구하오니 내 형의 손에서, 에서의 손에서 나를 건져내시옵소서 내가 그를 두려워함은 그가 와서 나와 내 처자들을 칠까 겁이 나기 때문이니이다
12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반드시 네게 은혜를 베풀어 네 씨로 바다의 셀 수 없는 모래와 같이 많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 창세기 32장

야곱은 거짓말하는 자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귀히 여기신 장자권이 야곱에게로 넘어갔을 때에 하나님은 그 거래가 타당하지 않았음에도 자신의 약속을 번복하지 않고 장자권의 소유자에게 복을 주셨다.
야곱이 감당하지 못한 은총과 진실함을 그가 이해하든 못하든지 부어주셨다.

동일한 맥락에서 약속을 지키시기 위하여 출애굽 1세대가 모두 죽었음에도 2세대를 가나안으로 이끄시는, 그런 분이 우리의 하나님이시다.

위 약속은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아니, 더욱 특별하다고 할 수 있다.

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10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 베드로전서 2장

그러한 하나님께서 우리를 왕 같은 제사장 삼으셨기 때문이다.
제사장은 성막에 들어가 하나님의 진노에 죽을까 하여 발에는 방울을 묶어 만일 죽었을 때에 이를 알 수 있게 하였을 만큼 책임이 무거운 자리였다. 그 책임이 조금 와닿는다.

우직한 하나님, 그리고 그의 일하심이
제사장된 우리를 통하여 세상에 밀려들어오는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3. 모르는 중에도

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 로마서 8장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결국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일을 주시고 완성하시며,
그의 나라는 그러한 방법으로 우리가 아닌 하나님에 의해 선포되며,
우리는 다만 그것이 이해될 때쯤 하나님에 의해 확인 될 따름이라는 것이다.
이를 명확히 자신의 뜻을 위하여 움직이시는 하나님께서 성령 하나님으로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신다. 실로 우리가 하는 것이 단 하나도 없다. 따라서 이것이 이루어지지 않을 리가 없다.

12 이 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13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

— 누가복음 6장

다만 우리가 이에 만족하고 기도를 게을리하지 않아야 함은, 우선은 우리가 마땅히 구할 바를 모르기 때문이고, 둘째로는 그리스도께서도 제자를 구할 때에 밤새도록 기도하신 후 정하시는 모범을 보이셨기 때문이다.

7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

— 사무엘상 16장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 나라와 그의 영광을 위한 순수한 마음으로 드려진다면
우리는 우리가 무엇이 필요한지도 모를 만큼 아둔하며
스스로 구원을 얻을 수 없지만, 그럼에도 그런 우리를 위해 성령은 우리를 위하여 중보해 주시며 결국 하나님은 기어코 우리를 통해 그의 뜻을 이루신다.

4. 시험을 대하는 태도

정리하자면, 비록 우리는 당장 무엇을 구해야 할지 모를 만큼 아둔하고 스스로를 구원할 능력이 없지만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 나라와 그의 영광을 향한 진실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걱정할 것이 없다. 성령께서 친히 우리를 위하여 중보하시며 결국 이루실 것이기 때문이다. (롬 8:26) 하나님께서는 굳이 그렇게 해주실 만큼 우리를 사랑하시며, 우리도 그를 사랑하게 하시려는 놀라운 목적이 있으시다.

나는 이 사실이 우리로 날마다 찾아오는 선택의 과정에서 유혹의 시험과 연단의 시험을 잘 구분해 내어 하나님을 잊거나 좌절하는 등의 결과를 상정하고 겁먹을 필요에서 자유롭게 한다고 생각한다. 흔들리는 지금의 과정은 우리를 더욱 제사장답게 살아내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회초리 내지 선물이라 여긴다.

주기도문에도 적혀있듯,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소서”라며 바짝 엎드려 기도하되, 허락된 환경에서는 제사장으로서의 책무를 다하는 것이 전부이지 않을까 싶다. 결국 우리가 모든 상황을 완벽히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하나님의 목적이 내 연약함보다 크다는 것, 기도로 묵묵히 머무를 때 결국 끝에 내린 나의 선택은 그의 인도하심이리라 굳게 믿는 믿음이 필요하다.

이제는 순수한 마음으로, 다만 온전한 신뢰와 나의 약함에 대한 뼈아픈 인정이 동반된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