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do Amoris, 사랑의 질서라는 뜻이다.
이 글에서는 위 사랑의 질서를 시작으로 하나님의 사랑
그리고 신정론의 일부까지 서술해보도록 하겠다.
1. 인간의 사랑
우선 인간의 사랑과 그 사랑이 온전하지 못하며,
하나님을 단순히 문자적으로 ‘사랑’이시라 일축할 수 없음을 서술한다.
1-1. Ordo Amoris
사랑의 질서는 인간의 마음이 향하는 방향성과 그 우선순위를 뜻한다.
당신은 사랑을 어떠한 형태로 정의하는가?
당신에게 사랑은 어떤 관념인가?
성경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으심을 받았고, 우리는 그런 하나님의 형상을 토대로 지어졌다고 말한다.
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요한복음 1장
26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우리가 우리의 형상을 따라서, 우리의 모양대로 사람을 만들자. 그리고 그가,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 위에 사는 온갖 들짐승과 땅 위를 기어다니는 모든 길짐승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 창세기 1장, 새번역
전통적으로 우리는 사랑을
아가페(무조건적 사랑), 에로스(결핍), 필리아(결속), 스트로게(가족), 필라우티아(자기애)
로 구분해왔다. 우리가 오랜 시간 관찰하여 찾아낸 위 사랑의 형태들은 성경에 의거하여 짐작할 때에, 하나님께로부터 물려받은 사랑의 작은 조각이라 생각하는 것이 타당하다.
1-2. 무질서한 사랑의 형태(열매)
그러나 성경에서 우리는 모두 죄인이라 말한다.
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에 못 미치는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 로마서 3장, 새번역
원어 성경에서는 죄를 ‘하타’(chatta’ah), ‘아원’(‘awon), ‘페샤’(pesah) 등으로 서술한다.
가장 많이 사용된 ‘하타’라는 단어는 ‘미달, 빗나감’을 의미한다.
‘아원’과 ‘페샤’는 각각 ‘불법’과 ‘반역’으로 번역된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니 인간의 본성이 하나님께서 창조시에 세우신 기준에 미치지 못하게 되었다. 하물며 사랑마저도 하나님께서 본래 지으신대로 하지 못하게 되었는데, 성경에서 몇가지 예시를 찾을 수 있다.
A. 잘못된 필라우티아
(딤후3:2)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뽐내며, 교만하며, 하나님을 모독하며, 부모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며, 감사할 줄 모르며, 불경스러우며,
B. 잘못된 에로스
(삼하11:2~4) 저녁 때에 다윗이 그의 침상에서 일어나 왕궁 옥상에서 거닐다가 그 곳에서 보니 한 여인이 목욕을 하는데 심히 아름다워 보이는지라
다윗이 사람을 보내 그 여인을 알아보게 하였더니 그가 아뢰되 그는 엘리암의 딸이요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가 아니니이까 하니
다윗이 전령을 보내어 그 여자를 자기에게로 데려오게 하고 그 여자가 부정함을 깨끗하게 하였으므로 더불어 동침하매 그 여자가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C. 잘못된 스트로게
(삼상2:29) 그런데 너희는 어찌하여, 나의 처소에서 나에게 바치라고 명한 나의 제물과 예물을 멸시하느냐? 어찌하여 너는 나보다 네 자식들을 더 소중하게 여기어, 나의 백성 이스라엘이 나에게 바친 모든 제물 가운데서 가장 좋은 것들만 골라다가, 스스로 살찌도록 하느냐?
D. 잘못된 필리아
(야고보서4:4) 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philia)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philos)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
1-3. 이해했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아니다 (Si comprehendis, non est Deus)
가장 쉽게 오류를 범할 수 있는 구절이 하나 있다.
16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시는 사랑을 알았고, 또 믿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있는 사람은 하나님 안에 있고 하나님도 그 사람 안에 계십니다.— 요한일서 4장, 새번역
어거스틴은 이렇게 말했다. “이해했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아니다 (Si comprehendis, non est Deus)”는 인간의 이성으로는 알 수 없는 신비를 온전히 인정하고, 하나님과 우리의 건널 수 없는 존재론적 격차가 있음을 시인하였다.
어거스틴이 사용한 단어, comprehendis는 단순히 ‘know’의 개념이 아닌, ‘완전히 붙잡다’라는 뜻에 가깝다. 우리 안에 있는 작은 ‘사랑’ 이라는 관념 속에 하나님을 가둘 때 오류를 범하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이해할 수 없는 우리에게 유비적 언어를 통하여서 차츰 그를 알게 하신다.
그리스도께서 수많은 비유로 말씀하신 것 또한 같은 이유에서이다.
‘사랑’은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는 우리가 가진 가장 큰 창구이자 통로일 뿐,
우리가 사랑이라 주장하는 그것은 결코 하나님이 아니다. 하나님은 그것보다 훨씬, 훨씬 크시다!
2.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
지금까지 사랑의 근원, 죄성으로 인한 인간적 사랑의 한계, 그리고 우리의 ‘사랑’ 이라는 작은 관념에서의 탈피를 다루었다. 지금부터는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에 대하여 다루고자 한다.
2-1. 하나님의 공의
하나님은 사랑만 있으신 분도 아니고, 공의만 있으신 분도 아니시다.
하나님은 ‘온전한 사랑’과 ‘온전한 공의’를 우리에게 보이셨다.
17 “내가 율법이나 예언자들의 말을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아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왔다.
18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은 일점 일획도 없어지지 않고, 다 이루어질 것이다.
19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가운데 아주 작은 것 하나라도 어기고 사람들을 그렇게 가르치는 사람은, 하늘 나라에서 아주 작은 사람으로 일컬어질 것이요, 또 누구든지 계명을 행하며 가르치는 사람은, 하늘 나라에서 큰 사람이라고 일컬어질 것이다.— 마태복음 5장
13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 마태복음 15장
25 하나님께서는 이 예수를 속죄제물로 내주셨습니다. 그것은 그의 피를 믿을 때에 유효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신 것은, 사람들이 이제까지 지은 죄를 너그럽게 보아주심으로써 자기의 의를 나타내시려는 것이었습니다.
— 로마서 3장, 새번역
그리스도의 말씀을 보라, 그는 기준을 없애려 오신 것이 아니라 다만 기준을 온전히 하기 위하여 오셨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께서는 제시하신 가장 큰 사랑을 스스로 이루셨으며,
공의로 말미암아 죽을 수 밖에 없는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히심으로 스스로 공의를 완성하셨다. 로마서에도 적혀있듯, 이는 그의 피를 믿을 때에 유효하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시다.
2-2. 하나님의 헤세드(Hessed)
헤세드는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변하지 않는 은혜, 긍휼, 자비, 인자 등을 뜻한다.
17 해가 지고, 어둠이 짙게 깔리니, 연기 나는 화덕과 타오르는 횃불이 갑자기 나타나서, 쪼개 놓은 희생제물 사이로 지나갔다.
— 창세기 15장, 새번역
22 하나님이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으니 그의 힘이 들소와 같도다
— 민수기 23장
고대 사회에서는 쪼갠 고기 사이를 지나가는 것은 가장 강력한 약속의 의미 중 하나였다.
본래 약속을 하는 사람들과 함께 쪼갠 사이를 지나가며 약속을 어길 시에는 해당 고기처럼 되겠다는 다짐을 보이는 상징적인 의식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쪼갠 고기를 준비하게 하시고, 본인 스스로 그곳을 지나가셨다.
하나님은 약속대로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내셨으며, 그들을 들소와 같은 힘으로 끝까지 데리고 가셨다. 1세대가 모두 가는 길에 죽고 2세대만 남을 때까지, 그들을 광야에서 준비 지키시며 약속의 땅으로 데리고 가셨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우리를 내버려두시지 않는다.
2-3. 하나님의 마음
그러나 결국 믿지 않는 자들은 영생을 누리지 못한다.
하나님께서 이토록 신실하게 우리를 끝까지 이끄신다면, 왜 이들은 영원한 멸망에 이르게 되는가?
4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 디모데전서 2장
41 그 때에 임금은 왼쪽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말할 것이다. ‘저주받은 자들아, 내게서 떠나서, 악마와 그 졸개들을 가두려고 준비한 영원한 불 속으로 들어가라.
— 마태복음 25장, 새번역
성경은 분명하게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 받기를 원하신다는 것,
그리고 영원한 불은 본래 악마와 그 졸개들을 위하여 준비된 것이고 우리를 위하여 준비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4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
5 또 찾아낸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6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아내었노라 하리라
7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누가복음 15장
하나님은 잃어버린 양 한마리를 찾아 다니시는 목자이시다.
그는 찾으셨을 때에 어깨에 메고 돌아와 즐거워하며 잔치를 여시는,
그 기쁨은 아흔아홉명의 의인보다 더하다고 말씀하신다.
인간의 사랑은 완전하지 못해서, 늘 폭력이 동반된다.
사랑하기에 속이 상해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게 되고,
사랑하기에 답답해서 해를 가하기도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완전하시다.
그는 늘 애통한 마음으로 찾으시며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의 문을 활짝 열어두셨다.
또한, 우리와는 다르게 폭력이 동반되지 않는다.
그의 의로우심과 헤세드로 상한 우리를 온전히 사랑하셔서 끝까지 기다리신다.
결국 그 끝에 있는 선물은 스스로가 택하는 것이다.
스스로 생명의 근원을 향하는 문을 안에서 닫았으니, 그 결과는 죽음일 수밖에 없다.
3. 하나님 나라
7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 요한일서 4장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그리고 사랑은 늘 대상이 필요하다.
하나님은 사랑하시기 위하여 세상과 사람을 만드셨고, 사랑하시기에 엄청난 배신을 한 우리에게 독생자를 베풀어주셨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하여서 오해 없이 올곧게 그의 뜻을 알 수 있는 그의 나라의 완성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1:1의 개인구원이 전부가 아니다.
개인의 구원은 이 거대한 회복의 역사에 초대받은 놀라운 결과이다.
24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 창세기 5장
14 아담의 칠대 손 에녹이 이 사람들에 대하여도 예언하여 이르되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 유다서 1장
에녹은 아담의 7대손이었으나, 하나님의 심판의 때의 뜻을 알았고, 이에 하나님과 동행하였다 일컬어졌으며, 하나님께서 그를 세상에서 죽지 않은 채 데리고 가셨다.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것은 단순히 같이 걷는 것이 아니요, 그의 뜻을 올곧게 알 정도의 사랑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모두에게 면죄부를 쥐어주는 ‘나눔’이라기보다,
그의 뜻과 의와 사랑이 온전하게 이루어지는 회복으로의 초대이며, 그의 나라의 완성과 그의 때에 있을 온전한 사랑과 올곧은 시선을 향한 놀라운 이끄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