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추에 대한 논문의 설명
『The tendency for interpersonal victimhood: The personality construct and its consequences, R. Gabay, 2020』이라는 심리학 논문을 읽던 도중, 예레미야의 묵상과 맞물리며 내게 큰 인사이트가 주어졌다. 거창한 논문의 이름과는 다르게 그 내용은 단순히 Rumination, 반추에 관한 이야기이다.
반추는 어떠한 일의 원인과 해결책을 먼저 생각하기보다 부정적이고 감정적인 측면만 생각하는 경향을 의미한다.
누군들 해당 경향에서 자유할까? 다만 스펙트럼이 존재해서 반추의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반추에 대한 논문의 설명은 이러하다.
- 고통의 영속화 — 스트레스 상황이 물리적으로 끝났음에도 한참 동안 심리적 고통을 지속화한다.
- 성격적 기질 — 감정의 상태가 아니라 성향이다.
- 우울-반추와의 연결 — 당연하겠지만, 우울증적 반추와 성향으로서의 반추는 높은 상관관계가 있다.
(해당 설명은 그 개념 자체로 받아들일 때 결코 해당되고 싶지 않은 개념들이지만 그것이 스펙트럼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은 기억하여야 한다.)
그리고 논문에서는 위와 같은 반추의 결과를 아래와 같이 정리한다.
정서적 결과 — negative autobiographic memory(부정적인 자서전적 기억)이 영속화된다.
한마디로, 사건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이 높은 강도와 긴 지속성을 갖게 된다는 뜻이다. 이는 사건을 기억하는 방법을 바꿀 뿐만 아니라 PTSD, MDD와도 상관관계가 있다.
이 또한 당연하겠지만, 타인을 용서하려 하기보다 복수하려 하는 성향이 강하게 드러난다.
[논문에서의 예시]
- 우울-반추 반응의 예시 문항
- 행동 : “내가 도대체 무슨 짓을 했길래 이런 일을 당하는 걸까?”라고 생각한다.
- 집단적 반추
- 집단 또한 트라우마 사건을 반추한다. 논문에서는 유대인들이 홀로코스트의 직접적인 피해자가 아님에도, 홀로코스트에 사로잡혀 그 일이 다시 일어날까 두려워한다고 말한다.
[논문에서의 제시]
- 문제의 해결책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자신이 얼마나 아픈지, 왜 아픈지 (증상, 원인과 결과)에만 집착한다.
- 부정적인 상처와 공격을 더 자주, 더 뚜렷하게 회상한다.
- 반추로 인한 피해의식으로 공감이 부족한 성향도 띠는데, 이때 상대방의 아픔을 공감하기보다 상대방을 ‘나를 이용하려는 이기적인 사람’으로 여긴다.
이것은 그 성향이 매우 강할 때 큰 인지적 덫으로 작용할 것이다.
예레미야 15장의 기도
10 내게 재앙이로다 나의 어머니여 어머니께서 나를 온 세계에 다투는 자와 싸우는 자를 만날 자로 낳으셨도다 내가 꾸어 주지도 아니하였고 사람이 내게 꾸이지도 아니하였건마는 다 나를 저주하는도다
11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를 강하게 할 것이요 너에게 복을 받게 할 것이며 내가 진실로 네 원수로 재앙과 환난의 때에 네게 간구하게 하리라
12 누가 능히 철 곧 북방의 철과 놋을 꺾으리요
13 그러나 네 모든 죄로 말미암아 네 국경 안의 모든 재산과 보물로 값 없이 탈취를 당하게 할 것이며
14 네 원수와 함께 네가 알지 못하는 땅에 이르게 하리니 이는 나의 진노의 맹렬한 불이 너희를 사르려 함이라
15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오니 원하건대 주는 나를 기억하시며 돌보시사 나를 박해하는 자에게 보복하시고 주의 오래 참으심으로 말미암아 나로 멸망하지 아니하게 하옵시며 주를 위하여 내가 부끄러움 당하는 줄을 아시옵소서
16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시여 나는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자라 내가 주의 말씀을 얻어 먹었사오니 주의 말씀은 내게 기쁨과 내 마음의 즐거움이오나
17 내가 기뻐하는 자의 모임 가운데 앉지 아니하며 즐거워하지도 아니하고 주의 손에 붙들려 홀로 앉았사오니 이는 주께서 분노로 내게 채우셨음이니이다
18 나의 고통이 계속되며 상처가 중하여 낫지 아니함은 어찌 됨이니이까 주께서는 내게 대하여 물이 말라서 속이는 시내 같으시리이까
19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네가 만일 돌아오면 내가 너를 다시 이끌어 내 앞에 세울 것이며 네가 만일 헛된 것을 버리고 귀한 것을 말한다면 너는 나의 입이 될 것이라 그들은 네게로 돌아오려니와 너는 그들에게로 돌아가지 말지니라
20 내가 너로 이 백성 앞에 견고한 놋 성벽이 되게 하리니 그들이 너를 치라도 이기지 못할 것은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하여 건짐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21 내가 너를 악한 자의 손에서 건지며 무서운 자의 손에서 구원하리라— 예레미야 15:10~21
역사적 배경
예레미야서는 15장의 시기인 여호아하스/여호야김 왕의 때와, 그 직전이었던 요시야 왕의 때를 우선 설명하여야 한다.
요시야의 때(B.C 640~609), 앗수르는 내부 분열과 나보폴라사르(느부갓네살 왕의 아버지)의 신바벨로니아 창건과 반란으로 인해 무너졌다.
그 사이, 남유다는 요시야 왕이 율법책을 발견하고 종교개혁을 하여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회복, 약화된 앗수르의 내정을 틈 타 남유다를 강권하게 하였다.
이때, ‘아슈르발리트’ 라는 왕이 이끄는 최후의 앗수르 잔당이 등장하는데, 애굽의 파라오 느고(네코)는 이들을 돕기 위해 군대를 보낸다. 요시야 왕은 애굽을 막아서고,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 므깃도에서 전투를 치르다 사망, 남유다는 애굽의 손에 넘어간다.
그 후, 애굽은 요시야 왕의 아들 중 한 명이었던 여호아하스를 왕으로 즉위 시키고 3개월 만에 폐위되고 애굽으로 끌려간다. 후에 요시야 왕의 다른 아들, 여호야김이 왕위에 오르고, 남유다는 억압적인 통치 아래 놓인다.
예레미야 15장은 그러한 역사적 배경 중에 서술되었다.
예레미야의 입장
요시야 왕의 때, 남유다는 전반적으로 건강해지고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로 하여금 요시야 왕의 즉위 기간 내내
심판과 저주의 말과 예언을 하게 하셨다.
여호람의 바알 숭배, 아하스와 므낫세, 그리고 아몬의 우상 숭배와 인신공양 등
여호와께서는 그의 백성들이 그를 배반하였던 일을 기억하신다고,
돌아와도 이제는 늦었다며 꾸준히 경고와 원망의 말을 예레미야를 통하여 하신다. (렘 15:4)
나라가 번창하고 있는데, 그런 말을 누가 듣고 싶어 했고 누가 예레미야의 말이 타당하다 여겼을까.
결국 예레미야의 말이 현실이 되어 남유다가 애굽의 손에 넘어갔을 때에도 예레미야는 결코 환영받지 못하는 자였다.
예레미야의 반추
A. 예레미야의 부르짖음
10 내게 재앙이로다 나의 어머니여 어머니께서 나를 온 세계에 다투는 자와 싸우는 자를 만날 자로 낳으셨도다 내가 꾸어 주지도 아니하였고 사람이 내게 꾸이지도 아니하였건마는 다 나를 저주하는도다
예레미야의 기도 — B. 예레미야의 간구
15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오니 원하건대 주는 나를 기억하시며 돌보시사 나를 박해하는 자에게 보복하시고 주의 오래 참으심으로 말미암아 나로 멸망하지 아니하게 하옵시며 주를 위하여 내가 부끄러움 당하는 줄을 아시옵소서
16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시여 나는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자라 내가 주의 말씀을 얻어 먹었사오니 주의 말씀은 내게 기쁨과 내 마음의 즐거움이오나
17 내가 기뻐하는 자의 모임 가운데 앉지 아니하며 즐거워하지도 아니하고 주의 손에 붙들려 홀로 앉았사오니 이는 주께서 분노로 내게 채우셨음이니이다
18 나의 고통이 계속하며 상처가 중하여 낫지 아니함은 어찌 됨이니이까 주께서는 내게 대하여 물이 말라서 속이는 시내 같으시리이까
여호와의 응답 — A. 예레미야의 부르짖음에 대한 응답
11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를 강하게 할 것이요 너에게 복을 받게 할 것이며 내가 진실로 네 원수로 재앙과 환난의 때에 네게 간구하게 하리라
12 누가 능히 철 곧 북방의 철과 놋을 꺾으리요
13 그러나 네 모든 죄로 말미암아 네 국경 안의 모든 재산과 보물로 값 없이 탈취를 당하게 할 것이며
14 네 원수와 함께 네가 알지 못하는 땅에 이르게 하리니 이는 나의 진노의 맹렬한 불이 너희를 사르려 함이라
B. 예레미야의 간구에 대한 응답
19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네가 만일 돌아오면 내가 너를 다시 이끌어 내 앞에 세울 것이며 네가 만일 헛된 것을 버리고 귀한 것을 말한다면 너는 나의 입이 될 것이라 그들은 네게로 돌아오려니와 너는 그들에게로 돌아가지 말지니라
20 내가 너로 이 백성 앞에 견고한 놋 성벽이 되게 하리니 그들이 너를 치라도 이기지 못할 것은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하여 건짐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21 내가 너를 악한 자의 손에서 건지며 무서운 자의 손에서 구원하리라
위 구절을 기도-응답 구조로 보고, 응답에서 어떠한 메시지를 찾아낼 수 있는지 서술하겠다.
- 예레미야의 부르짖음에 응답하심
- (11절) 예레미야에게 하나님은 강하게 하심을 약속하신다. 결국 그 끝에 그로 진실을 말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의가 세워져 상황이 역전될 때를 예언하신다.
- (12~14절)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북방의 철과 놋’ 즉, 바벨론이 남유다를 칠 것을 알려주신다. 그리고 곧바로 그 침시가 얼마나 처절할 것인지 알려주신다. 심판, 현실, 파국을 말씀하신다.
- 예레미야의 간구, 그리고 반추
- 예레미야는 (11절)에 하나님께서 강하게 하시겠다는 약속에도 불구하고 원망에 가까운 애걸복걸을 하고 있다. 15절을 보게 되면, “주의 오래 참으심으로 말미암아 나로 멸망하지 아니하게 하옵시며” 라 말한다. 예레미야는 당신의 오래 참음(악인남유다 백성)들을 당장 심판치 않으심으로 인해 본인이 죽게 생겼다며 원망하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주를 위하여 내가 부끄러움 당하는 줄을 아시옵소서”라고 울부짖는 그의 심정은 분명 원망이 가득하였음을 느낄 수 있다.
- (16절) “… 나는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자라…” 라고 말하는 예레미야를 봤을 때에, 그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사실에 매우 자랑스러워했다는 사실을 살펴볼 수 있다. 그러나 그가 이어서 “주의 말씀은 내게 기쁨과 내 마음의 즐거움이오나 내가 기뻐하는 자의 모임 가운데 앉지 아니하며 즐거워하지도 아니하고 주의 손에 붙들려 홀로 앉았사오니 이는 주께서 분노로 내게 채우셨음이니이다”라 고백하는 모습을 보라. 한마디로 “내가 당신께서 부르신 것까지는 좋았는데, 당신의 의대로 이리 몰아넣으시니 죽겠습니다.”라는 고백이다.
- (18절) “나의 고통이 계속하며 상처가 중하여 낫지 아니함은 어찌 됨이니이까 주께서는 내게 대하여 물이 말라서 속이는 시내 같으시리이까” 예레미야의 원망은 절정을 찍는다. ‘속이는 시내’라고 말하며 하나님에 대한 불신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공격성, 배신감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것이다.
- 하나님의 응답
- 여기서 하나님의 응답은 이러하다. (19절) “… 네가 만일 돌아오면 내가 너를 다시 이끌어 내 앞에 세울 것이며 네가 만일 헛된 것을 버리고 귀한 것을 말한다면 너는 나의 입이 될 것이라 그들은 네게로 돌아오려니와 너는 그들에게로 돌아가지 말지니라”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첫 번째로는 ‘돌아오라’, 두 번째로는 ‘헛된 것을 버리고 귀한 것을 말하라’라고 명령하신다. 회개와 사명의 회복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그들에게로 돌아가지 말지니라’라고 말씀하시며, 예레미야의 현실적으로 고된 환경에서도 동화되지 말고 거룩하라 명령하신다.
- (20절) “내가 너로 이 백성 앞에 견고한 놋 성벽이 되게 하리니…”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회개, 사명의 회복, 거룩을 명하시고 곧바로 그를 ‘놋 성벽’ 만들겠다고 약속하신다. 그뿐만 아니라, “… 그들이 너를 치라도 이기지 못할 것은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하여 건짐이라…“라고 말씀하시며 고난은 없애주시지 않지만 하나님의 함께 하심으로 예레미야를 이기지 못할 것 또한 약속하신다.
- (21절) “내가 너를 악한 자의 손에서 건지며 무서운 자의 손에서 구원하리라” 하나님은 그 끝에 약속을 확언시켜주신다. 하나님의 들소와 같은 의지가 분명하게 드러나는 장면이다.
실로 스스로가 겹쳐 보이지 않는가?
실로 그렇게 생각되던 때에 나에게도 똑같이 응답하시던 하나님이 그대로 보이지 않는가?
오직 그리스도
심리학 논문은 반추의 핵심을 이렇게 정의한다. “문제의 해결책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자신이 얼마나 아픈지, 왜 아픈지, 그 고통의 증상과 원인에만 집착하는 것.” 더 나아가서 피해자 성향을 띠고, 상황을 헤쳐 나갈 주도성을 잃어버리고 무기력한 피해자의 자리에 도달한다고 주장한다.
(18절) “나의 고통이 계속하며 상처가 중하여 낫지 아니함은 어찌 됨이니이까 주께서는 내게 대하여 물이 말라서 속이는 시내 같으시리이까” 라고 울부짖은 예레미야는 논문에서 서술한 반추와 피해자 의식으로의 발전을 그래도 띠고 있다.
그럴 때 하나님은 결코 예레미야에게 더 나아질 상황이나 환경을 약속하지 않으셨다. 도리어 잔혹할 정도로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확인시켜 주셨다. 그리고서는 예레미야의 원망과 불신 섞인 간구를 들으시고 하나님께서는 명확한 지침을 주셨다.
우선은 회개, 다음은 사명의 회복, 마지막으로는 거룩이다.
그를 바라보라는 하나님의 놀라운 명령이다.
하나님의 약속을 다시 읽어보면 그의 약속은 비단 예레미야를 향하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에 대한 약속이기도 하다. 중첩적인 의미를 지닌다. 그의 약속이 그리스도 예수로 성취되었은즉, 우리 또한 우리의 반추에서 다시금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어떠한 것에도 취하지 말고 다만 성령 충만함을 구해야 함이,
그리고 그것을 분별하는 놀라운 기준이 나의 안에 있지 않고 오직 주님께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사건으로, 사람으로, 그리고 환경과 기복으로 반추의 강에서 가라앉던 나를 하나님께서 2600년 전 선지자에게 하셨던 말씀을 그대로 사용하셔서 건지셨다. 당신에게도 동일한 은혜가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