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20: 6~13

6 모세와 아론이 회중 앞을 떠나 회막 문에 이르러 엎드리매 여호와의 영광이 그들에게 나타나며
7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8 지팡이를 가지고 네 형 아론과 함께 회중을 모으고 그들의 목전에서 너희는 반석에게 명령하여 물을 내라 하라 네가 그 반석이 물을 내게 하여 회중과 그들의 짐승에게 마시게 할지니라
9 모세가 그 명령대로 여호와 앞에서 지팡이를 잡으니라
10 모세와 아론이 회중을 그 반석 앞에 모으고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반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하고
11 모세가 그의 손을 들어 그의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치니 물이 많이 솟아나오므로 회중과 그들의 짐승이 마시니라
12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회중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13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와 다투었으므로 이를 므리바 물이라 하니라 여호와께서 그들 중에서 그 거룩함을 나타내셨더라

민수기 25: 1~9

1 이스라엘이 싯딤에 머물러 있더니 그 백성이 모압 여자들과 음행하기를 시작하니라
2 그 여자들이 자기 신들에게 제사할 때에 이스라엘 백성을 청하매 백성이 먹고 그들의 신들에게 절하므로
3 이스라엘이 바알브올에게 가담한지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시니라
4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백성의 수령들을 잡아 태양을 향하여 여호와 앞에 목매어 달라 그리하면 여호와의 진노가 이스라엘에게서 떠나리라
5 모세가 이스라엘 재판관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각 바알브올에게 가담한 사람들을 죽이라 하니라
6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회막 문에서 울 때에 이스라엘 자손 한 사람이 모세와 온 회중의 눈앞에 미디안의 한 여인을 데리고 그의 형제에게로 온지라
7 제사장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보고 회중 가운데서 일어나 손에 창을 들고
8 그 이스라엘 남자를 따라 그의 막사에 들어가 이스라엘 남자와 그 여인의 배를 꿰뚫어서 두 사람을 죽이니 염병이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그쳤더라
9 그 염병으로 죽은 자가 이만 사천 명이었더라
10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11 제사장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내 질투심으로 질투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내 노를 돌이켜서 내 질투심으로 그들을 소멸하지 않게 하였도다
12 그러므로 말하라 내가 그에게 내 평화의 언약을 주리니
13 그와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제사장 직분의 언약이라 그가 그의 하나님을 위하여 질투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속죄하였음이니라

위 두 본문을 처음 비교하게 되었을 때, 조금 의아했었다.
분명 모세도, 비느하스도 분노하였고 비느하스는 심지어 살인까지 하였으나 하나님께서 모세의 분노에는 심판을, 비느하스의 분노에는 자비를 베풀어주신다. 후에 두 신약 구절을 비교하며 하나님의 마음을 조금 알게 되었다.

마태복음 16:21~24

21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22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23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요한복음 2:13~22

13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더니
14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15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성전에서 다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16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
17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
18 이에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예수께 말하기를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냐
1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20 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하더라
21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22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

모세와 베드로는 둘 다 개인의 분노와 의에 의해서 나섰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일 중 한 가지, 우상숭배를 본인이 우상이 되어 하나님보다 먼저 되어 나섰다.
모세와 아론은 약속된 땅에 들어가지 못하였고, 베드로는 사탄이라고까지 불렸다.

위 두 인물과 동일하게 분노하지만, 그 분노의 중심이 달랐던 비느하스와 그리스도를 보자.
비느하스는 가증한 두 사람 사람을 하나님의 질투로 움직여 죽이고 하나님의 노를 돌이켰다.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든 이들에게 파괴적인 행동을 행사하셨다.

민수기 20과 마태복음 16장의 비교

모세와 아론 : 하나님께서 반석에게 명하여 물을 내라고 하셨지만, 모세는 그의 혈기로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반석에서 물을 내랴” 라고 하며 반석을 두 번 치린다. 인간적인 분노였다.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여호와를 믿지 않았으며, 그의 거룩함을 드러내지 못하였다 꾸짓으셨다.

베드로 : 인간적인 연민과 불안으로 그리스도의 구속사 사건을 훼손시킬 뻔했다.
베드로가 그리스도께 취한 행동과, 그리스도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광야에서 마귀에게 시험받으셨을 때에 감당하신 그 시험은 본질적으로 같다.
그리스도께서 베드로에게 “내 뒤로 물러가라” 라고 하신다.
앞서지 말고, 그를 믿고 따라가는 것을 요구하셨다. 제자로이다.

민수기 25장과 요한복음 2장의 비교

비느하스 : 여호와를 두고 모압 여인들과 음행하고 우상 숭배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전염병을 내리신다.
그 와중에도 뻔뻔하게 시므온 지파 사람이 미디안 여인을 장막으로 데리고 들어가는 일이 발생하자 아론의 손자 비느하스가 창을 들고 가 둘을 찔러 죽인다. 여호와께서 “그가 나의 질투심으로 질투하여” 라고 말씀하셨다.
그의 행동은 극단적인 분노가 아니라, 죄를 끊어내는 하나님의 질투로 말미암은 일이었다.

그리스도 : 예배의 공간이 장사꾼의 터로 바뀐 것을 보고 그리스도는 노끈을 채찍 삼아 짐승을 모두 내쫓고 상을 엎으셨다.
17절에 적혀있는 구절은
“주의 집을 위하는 열성이 나를 삼키고 주를 비방하는 비방이 내게 미쳤나이다(시편 69:9)”
의 구절이다.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집을 깨끗하게 하신 후에 성전을 허물고 사흘만에 다시 지으실 것을 약속하신다.
그리스도의 분노는 단순한 화풀이로 끝난 것이 아니요, 구속사의 선포이다.

26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27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 에베소서 4장

분노는 죄가 아니다. 우리의 분노는 하나님의 분노와 그 씨앗이 다르기에 죄로 이어질 수 있으나 늘 사랑의 하나님과 진노의 하나님은 같이 등장하셨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
위 본문에서 볼 수 있듯 바울도 분과 죄를 나누어 생각하였고, 다만 해가 지도록 분을 품거나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고 하였다.

사랑절이라 불리는 고린도전서 13:6에는 사랑은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라고 서술한다. 불의를 기뻐하지 않는데 어찌 불의 앞에서 분을 품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본질적으로 우리는 베드로의 말을 듣기를 바란다. 우리는 모세의 노를 품고 살아간다.

친구의 아픈 책망은 충직으로 말미암는 것이나 원수의 잦은 입맞춤은 거짓에서 난 것이니라

— 잠언 27:6

하지만 본래 변화는 아픈 것이요, 변화하지 않는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성령의 인도가 아닌 본인의 감동으로 움직이는 사람이고, 믿음과 순간적 위로를 구분 짓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 본질을 거스르고 아파하고 있다면 도리어 다행이다.

하나님의 진노는, 그 진노의 원흉인 그의 질투는 무시무시하다.

13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 고린도전서 10장

아주 흔하게 오용되는 말씀이다.
여기서 말하는 시험은 “힘든 일”이 아니라, “죄에 대한 유혹”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죄에 대한 유혹을 이겨낼 수 있도록 도우시지만,
힘든 일에 넣기를 마다하시지 않으신다.
스스로 감당할 만한 일에만 처해진다면 그 누가 하나님을 의지하려고 하겠는가?
다윗은, 욥은, 수많은 선지자들은 비극이라 불릴 수밖에 없는 일을 그들이 감당할 수 있어서 주셨겠는가?
그가 그토록 질투 많으신 하나님이심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 올바른 질투에 우리의 마음을 합하여야 한다.

에베소서 말씀에서도 알 수 있듯, 우리가 분을 내되 그 분에 삼켜지면 안 된다.
오른뺨 비유 또한 같은 맥락이다.
가만히 당하고만 있으라는 말이 아니라 그 분노에 삼켜지지 말라는 이야기이다.
그리스도는 말씀을 온전하게 이루시고자 가만히 계셨던 것이지, 그의 채찍과 베드로에게 사탄이라 부르신 것을 보면 분 없으신 분이 아니셨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이지, 세상에서 제시하는 “착한 예수쟁이”의 이미지에 부합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자들이 아니다.

그 어떠한 세속적인 타협이나 우상은 우리 마음 안에서 하나님과 공존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 꾸준히 보여주신 진노가 없었다면 우리는 은혜를 은혜라 여기지 못했을 것이고,
진노가 없었더라면 우리는 그 어떠한 기준도 세우지 못했을 것이다.
불편하지만 필연적인 기준 없이 살아가는, 하나님 나라보다 개인의 구원에 눈이 멀어 그것만 바라보는 현대 개신교와 그 성향이 매우 짙은 복음주의 선교 단체들의 가장 조심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따뜻한 공동체는 세상에 널려있다.
그러나 우리는 복음을 위하여 모인 자들이다.
따뜻한 공동체를 포장지 삼아 복음을 타협할 생각을 일말이라도 하려 하였다면 성경을 제대로 읽길 바란다.

16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 요한계시록 3장

예수를 믿는 것은 어떠한 스펙트럼도 아니고 다만 온전히 믿음뿐이다.

이 글은 스스로의 해이해진 영적 상태를 채찍질하기 위해 작성하였고,
또한 필요와 때에 따라 경고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초안으로서 작성하였다.
나의 찔림이 당신의 찔림이 되길 바란다.